스위스-EU 새 협정, 상원 ‘이중 다수’ 요구…최종 결정은 아직
베른 | 2026년 10월 6일
스위스와 유럽연합(EU)의 관계를 새롭게 정비하기 위한 협정 패키지가 스위스 의회에서 본격적인 심사 단계에 들어갔다. 스위스 상원인 Ständerat(전주의회)은 지난 9월 말 EU와의 새로운 협정 패키지를 심의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국민뿐 아니라 칸톤의 동의도 요구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아직 협정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원인 Nationalrat(국민의회)의 심의가 남아 있으며, 국민투표의 구체적인 방식 역시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
기존 양자관계를 발전시키는 ‘Bilaterale III’
이번 논의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Bilaterale III(양자협정 III)’로 불리는 스위스-EU 협정 패키지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1990년대부터 EU와 분야별 협정을 체결하면서 이른바 양자 노선(bilateraler Weg)을 유지해 왔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이번 패키지를 EU 가입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기존의 양자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설명하고 있다.
협정 패키지에는 기존 협정의 개정과 함께 전력, 보건, 식품안전 분야의 새로운 협력협정 등이 포함된다. 연구·교육 분야의 유럽 프로그램 참여와 스위스의 EU 관련 재정적 기여에 관한 내용도 다뤄진다.
이번 협정은 스위스와 EU가 2024년 말 정치적 합의를 이룬 뒤 스위스 국내의 의회 절차로 넘어온 사안이다.
핵심 쟁점은 ‘국민투표 방식’
상원 심의에서 특히 논란이 된 것은 협정의 내용뿐 아니라 국민투표를 어떤 방식으로 실시할 것인가였다.
스위스에서는 사안의 성격에 따라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과반수만 필요한 경우와 국민과 칸톤 모두의 과반수가 필요한 경우가 구분된다. 후자를 흔히 ‘이중 다수(Volk und Stände)’라고 한다.
상원은 이번 EU 협정 패키지에 대해 국민과 칸톤 모두의 동의를 요구하는 방향을 지지했다. 이를 위해 의무적 국민투표와 헌법 개정이라는 두 가지 법적 경로가 함께 논의됐다.
이 결정은 최종적인 국민투표 방식을 확정한 것이 아니다. 하원이 관련 법안과 헌법 개정안을 심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EU 협정에 대한 이중 다수 국민투표가 확정됐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현재 확정된 것은 상원이 이중 다수를 요구하는 방향을 채택했다는 사실이며, 최종 결정은 의회의 추가 심의를 거쳐야 한다.
왜 ‘이중 다수’가 중요한가
이번 논쟁은 단순히 EU와의 관계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EU가 스위스의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인 만큼, 기존 시장 접근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연구·교육 및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지속하는 것이 스위스의 경제적 이익에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신중하거나 반대하는 측에서는 EU 규정의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스위스의 국내 법체계와 정책 결정에 EU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특히 EU의 관련 규정이 바뀌었을 때 스위스가 협정에 따라 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위스 의회와 국민의 결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중요한 논점이다.
결국 이번 협정의 핵심적인 정치적 질문은 EU와의 협력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하면서 스위스의 정치적 자율성과 직접민주주의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
이민과 노동시장도 주요 쟁점
협정 패키지와 함께 스위스 국내의 노동시장 및 이민정책과 관련한 보완 조치도 논의되고 있다.
상원은 노동자 보호와 관련한 여러 조치를 검토하는 한편, EU 시민의 스위스 이주와 관련해서도 보호장치를 논의했다.
이 문제는 스위스 국내 정치에서 민감한 사안이다. EU와의 협력 확대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임금 및 노동조건 보호 등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EU 협정 패키지는 외교와 통상 분야를 넘어 노동시장과 이민, 사회보장 및 국내 규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정치적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약 33억 스위스프랑 규모의 재정 기여
스위스가 EU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부담하게 될 재정적 기여도 의회의 주요 논의 대상이다.
상원은 2030년부터 2036년까지의 관련 재정지원과 관련해 약 33억 스위스프랑 규모의 신용을 승인했다.
이 재정에는 EU 회원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낮은 국가의 발전을 지원하는 기여와 이민 분야 협력과 관련된 재정이 포함된다.
찬성 측은 이를 EU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로 평가한다. 반면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스위스가 부담하게 될 비용과 그에 따른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면밀하게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단계는 하원 심의
상원의 결정만으로 협정 패키지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공은 Nationalrat(국민의회)로 넘어간다. 하원은 향후 협정 패키지와 국민투표 방식, 관련 국내 법률 및 헌법 개정안을 심의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상원과 하원이 협정의 세부 내용과 국민투표 절차에서 어느 정도까지 의견을 조정할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또한 협정 패키지에 포함된 전력협정은 별도의 의회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현재 시점에서 전체 협정이 스위스 의회를 모두 통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앞으로 주목할 세 가지
이번 사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세 가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하원이 상원의 ‘이중 다수’ 요구를 받아들일지 여부다.
둘째, EU 시민의 이동과 노동자 보호 등과 관련한 국내 보완조치가 최종적으로 어떤 형태로 확정될지다.
셋째, 의회의 모든 절차가 끝난 뒤 실제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스위스 국민과 칸톤이 협정 패키지를 어떻게 평가할지다.
이번 협정은 스위스의 EU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협정이 아니다. 스위스 정부가 제시하는 기본 방향 역시 EU 회원국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양자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EU와의 경제적·제도적 협력이 확대될 경우 스위스의 국내 정책 결정과 법률 체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스위스 상원이 EU 협정 패키지를 계속 심의하면서 국민과 칸톤 모두의 동의를 요구하는 방향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최종적인 협정 내용과 국민투표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앞으로 하원의 심의와 양원 간 조정 과정이 스위스-EU 관계의 다음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단계가 될 전망이다.
참고자료
SRF, 「Neue bilaterale Verträge: EU-Paket soll laut Ständerat Volk und Ständen vorgelegt werden」, 2026년 9월 30일
SRF, 「Vertragspaket mit der EU: Das hat der Ständerat entschieden」, 2026년 10월 1일
스위스 연방정부(Bundesrat), Schweiz-EU 협정 패키지(Bilaterale III) 공식 자료
스위스 연방의회(Parlament), EU 협정 패키지 관련 의회 결정 자료
스위스 외교부(EDA), Paket Schweiz-EU 관련 공식 자료
사진: Andreas Fischinger(@afisch)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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